출석(7)
우정, 변형근, 홍기민, 이주환, 이승용, 천종민, 양준명
한반도의 겨울은 어느 해나 추웠음에도 태어나 처음 추위를 맞이하는 듯한 본인을 포함한 주변의 태도는 자연의 흐름을 넘어서기에 부족해 보입니다.
이에 반해 연무재 일부동도들의 치열한 수련의지는 마땅히 그러해야 함에도...부족한 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무릇, 수련에 임하는 자는 장소불문, 시간불문이라 했거늘...하늘을 우러러 여러점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찾아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연무재폐원이후 오랫만에 원장님께서 찾아오신다고 하니...한 해를 정리하는 기분으로 수련에 임하리라 다짐하며 퇴근길을 재촉합니다.
자전거로 출근했지만 수련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지하철로 이동했습니다. 수련장을 찾아갈 때는 언제나 망설임과 설레임이 함께 존재합니다.
원장님과 함께 양재동 도장에서 수련할 때는 어김없이 지하로 내려갈 때면 길안내를 자처하듯 은은한 불빛이 상당히 운치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에 반해 역삼동 지하연습실은 동도들의 결연한 의지가 묻어있다고 봅니다. 영화제목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열정의 수련시기를 지나 지금은 냉정하게 수련의지를 다져야 할 때가 아닌가 되짚어봅니다.
번호키를 열고 연습실 조명을 켜고 살짝 문을 열어 불빛이 흘러나가도록 연출해 두었습니다. 작은 행위 하나에도 스승님의 배려를 통해 배운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저역시 어쩌면 교육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지난 날의 꿈과 지독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바깥공기에 비해 다소 훈훈함 마저 감도는 지하연습실 바닥에 앉아 유근법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일년새 10킬로그램 불어버린 몸은 타고난 유연성마저 퇴행을 맞이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규칙적으로 매주 화요일만이라도 3주째 수련에 참가한 것만으로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어 새삼 일관된 삶의 자세를 깨닫게 됩니다.
유근법 동작 하나하나를 음미하지도 못하고 호흡과 통증에 몸을 비틀게 됩니다. 순간순간 인내와 타협의 선택에서 아직은 타협에 가깝습니다. 매순간 직전의 자신과의 승부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있음을 잊지말아야 겠습니다.
30분정도 유근법으로 몸을 풀고나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홍사범이 도착했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원장님 도착시각을 확인하면서 뒤풀이 장소에 대한 짧은 의견도 교환했습니다.
홍사범이 몸을 풀기전에 무뎌진 본인의 동작에 대해 개별지도를 해주었습니다. 개합, 즉 몸을 모았다 풀었다할 때의 활개를 시범과 함께 설명해주었는데 4식 몸통바깥막고 지르기 동작에 대해 오늘에서야 비로소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본인은 연법을 1식부터 5식까지 홍사범의 조언을 참고로 반복해 보았습니다. 그때쯤 양준명군이 수련장에 들어와 인사를 나누고 홍사범과 더불어 유근법으로 몸을 풀었습니다. 수련시작시각에 맞추어 이사범과 변사범도 도착해서 짧게 몸을 풀고 홍사범의 지도로 금일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순서에서 작년과 달라진 부분은 연법1식부터 5식까지 평련수련할 때 왼쪽에서 시작해서 오른쪽에서 끝나는 형식과 오른쪽부터 시작해서 왼쪽에서 끝내는 방법을 함께 수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도 오른쪽방향으로 진행할때 동작이 어색해서 순서를 까먹기도 합니다. 나름 좌우균형을 맞추기 위해 실제수련에 적용한 좋은 예라고 하겠습니다.
수련중간에 용사범이 합류해 현재 수련중인 동도들이 모두 참석했습니다.
변사범, 홍사범, 이사범의 수련동작은 수련기간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합니다. 변사범이 허리를 비틀어 뒤에서 앞으로 "퉁"하고 튀어나가는 느낌이라면, 홍사범은 "쑥", "훅"하며 밀어젖히는 느낌입니다. 그에 비하면 이사범은 "팍", "투두둑"하고 차고 뛰어가는 느낌입니다.
용사범과 양준명군의 동작은 좀더 관찰해 보겠습니다.
연속품새수련을 마칠즈음 원장님께서 수련장에 도착하셨습니다. 가볍게 인사를 드리고 주춤서기12분에 들어갔습니다.
모처럼 여러명이 함께 연습실에서 수련을 해서 그런지 실내공기가 포근해졌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원장님과 함께 연습실앞 "한국순대"에서 국밥과 순대 그리고 알코올음료로 1차 뒤풀이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각자의 목표를 점검하는 질문을 던지셨는데 한번쯤 각오를 다시잡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지금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의 이정표를 다시 확인하는 의문부호를 던져봅니다.
김정일 사망소식이 연무재뒤풀이에서도 회자되었습니다. 원장님께서 김정일 사망에 따른 북한주민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동도들 생각을 물었습니다. 이런저런 답변을 들으시던 원장님께서 "무지"해서 그런게 아닐까라는 의견을 제시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무지와 싸워가는게 아닐까요?
세상만사 어쩌면 국내외정세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신문에서 보니 김현희씨가 "살기위한 지혜"라는 말로 북한주민의 눈물을 해석하더군요. 비단,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본인역시 세상살이에 너무 무지(여기서는 지혜가 없슴)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칩니다.
1차 뒤풀이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덕분에 모처럼 원장님께서 2차뒤풀이를 제안해 역삼역 부근 맥주집에서 그동안 쌓인 얘기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덧붙여서 원장님께서 동도들을 위해 던진 얘기를 본인의 입장에서 정리해 봅니다.
1. 인사 :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생사를 확인하라. 인사하는 습관은 생명을 존중하는 시작점이다.
=> 한 건물 한 층에 사무실을 두고도 춥다고 문을 닫고 있기보다 아침에 일부러 문을 열어두고 옆 사무실 사람들이 출근하면 꼬박꼬박 인사를 드렸습니다. 굳어있던 이웃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아침마다 웃으며 반갑게 안부를 묻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2. 차이 : 나와 다름을 인정하라. 옳고 그름은 이성적 판단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좋고 싫음은 개인의 감성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 동성애, 민족관, 역사관 등과 같이 추상적 의식구조는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다양한 문화환경과 학습여건 그리고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르게 표출됩니다. 내가 싫다고 해서 틀린것은 아닐 수 있고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닙니다. 보편적 정서라는 기준 역시 여러사람의 암묵적 합의에 따른 것이므로 소수의 표현도 귀기울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3. 교양 : 죽는 순간까지 배움을 게을리 하지말라. 무지는 배움의 끈을 놓는 순간 찾아온다.
=> 추위앞에 움츠려드는 몸보다 더 무서운게 "시간없다", "피곤하다"는 게으름앞에 고개속이는 머리입니다. 사람의 뇌는 사용할 수록 노화가 지연되는 아주 독특한 구조라고 합니다. 교양이라는 것이 책을 많이 읽는다고 그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독서를 통해 자신의 지적한계를 극복하고 타인의 지적영역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허물고 확장해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4. 의지 : 반드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라. 사소한 것이라도 계획대로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을 길러라.
=> 오래전부터 원장님께서 동도들이 자치적으로 연무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않았습니다. 작년 폐원후 변사범, 홍사범, 이사범, 용사범의 노력으로 학동초등학교 운동장과 현재의 역삼동 연습실에서 수련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의 자치회비로 운영되는 비영리도장 "연무재"의 이름으로 개원하는 그날까지 다소 힘겹더라도 동도들의 의지를 다져나갔으면 합니다.
이승용 역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연무일지는 종민형이 쓰셔야...ㅋㅋ 마지막 글들을 읽으며 2011년 어떻게 살았는지, 2012년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2012년 되시길 바랍니다~ 2012년엔 많이 빠지지 말아야 할텐데...-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