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6)
우정, 변형근, 홍기민, 이주환, 천종민, 장원석
몇 시에 잠자리에 든 것과 관계없이 의식이 깰 때쯤이면 누워서 무릎을 세우고 발목을 풀기 시작합니다. 어두운 방안에 조용히 앉아 유근법으로 몸을 깨우고, 불을 켜면서 일어나 108배로 정신을 깨웁니다. 이어서 정권단련을 하면서 나의 목표를 소리내어 말합니다. 그 정권상태로 주춤서기를 합니다. 이 때, 언제부턴가 스승님(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낮춰!"
몸에는 송알송알 땀방울이 맺혀있습니다. 그 상태로 도복을 입고 아침산책을 나갑니다.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있는 새벽입니다. 서울에서 별을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사실 새벽에 숲길을 걷고 있으면 수많은 새벽별들과 만나게 됩니다.
싱싱하게 나를 반기던 나뭇잎이 어느새 낙엽이 되어 내 발에 밟히고 있습니다. 제법 냉기를 품은 바람과 매미소리보다 귀에 편한 귀뚜라미가 "끼루룩 끼뚜루루"하고 울고 있습니다. 가을이구나...그래 가을이다.
본인의 하숙집이 북촌한옥마을, 인사동 그리고 조계사와 가까운 곳이라 새벽산책하기가 좋습니다. 걷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면서 내면의 깊이가 더해집니다. 안풀리던 문제도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문득 금일은 걷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뜬다고 하는데 해는 항상 자기 자리에 가만히 있고 지구가 혼자서 한바퀴 도는 것이다. 계절이 바뀐다고 하는데 지구가 태양주위를 도는 것이다.
거경궁리(居敬窮理), 우리 선조들은 사물의 이치를 깨닦는 과정으로 먼저 새벽에 일어나 좌정이나 산책을 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자기수양(거경)을 통해서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가치를 탐구(궁리)했다고 합니다.
연무재수련에 있어서도 본질은 변함이 없는데 그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원장님께서 설명해주시는 내용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수련도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어제보다 진일보한 모습으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오늘 우리가 수련을 통해 쌓은 진리가 내일 우리 후배들이 따라올 길이기에 낱 동작 하나하나 관찰하는데 게을러져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도(同道)입니다.
원장님께서, 유근법 낱 동작에 적당한 이름을 생각해보자고 하십니다. 다소 사적인 수련느낌까지 적어보는 것은 연무일지가 우리의 수련처럼 쌓여가면 멋진 수필(수련에세이)을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생활리듬을 만드는데 많은 고뇌가 뒤따랐습니다. 일일이 설명하지 못하지만 부단히 개선한 상태가 지금입니다.
말은 생각의 집이라고 합니다. 그 집을 꾸미는 것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것이 어렵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옛부터 선조들이 선지후행(먼저 이해하고 실천한다.), 선행후지(체험하면서 이론을 정립한다.)를 두고 끊임없이 논쟁을 했습니다. 본인도 수련일지를 쓰면서 국어사전을 참고합니다. 비록 지금은 시간이 걸려도 이 또한 내 안에 쌓이는 즐거움입니다.
금일은 수련일지에 들어가는 서언(序言)이 길었습니다. 혼자 지내면서 침묵이 생활이다 보니 글로 풀게 되나봅니다. 궁극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도록 몸으로 체험하고 몸으로 드러내야겠습니다.
금일 수련에는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습니다. 마을버스가 오지않아 처음에는 5분만, 그 다음에는 10분, 그러다보니 어느새 20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지하철역까지 빠르게 걸어갔습니다. 혼자 피식거리며 웃었습니다.
도장에는 원장님과 홍기민 사범이 이미 유근법으로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홍기민 사범이 유근법하는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예전보다 몸이 많이 굳어있었습니다. 호흡이 문제라고 원장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 본인이 볼 때는 타고난 유연성도 영향이 있어 보입니다. 꾸준히 유근법을 생활화하면 충분히 개선되리라 봅니다. 평소 수련이 부족한 대신 수련동작을 머리속에 그려본다는 홍기민 사범의 말을 통해 품새동작이 그저 만들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뱀자세를 할 때쯤 장원석 씨가 도장에 들어와 쟁기자세로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쉬었다고 하는데 유연성이 좋아보입니다. 호흡과 더불어 수련에 동참하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춤서 몸통지르기를 마치고 기본동작 수련을 할 때, 이주환 사범이 수련에 동참했습니다. 일주일 휴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뒷굽이 동작을 보고 원장님께서 평소 수련을 하나보다 하면서 기본틀은 유지된다며 칭찬하셨습니다. 예전에 이주환 사범이 학교에서도 앞굽이, 뒷굽이를 하면서 걸어다닌다며 한창 수련에 빠져있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하루종일 서서 하는 일을 하고 있어 많이 지쳐있을텐데 앞으로 수련동참으로 기력을 회복하길 빕니다.
금일은 원장님께서 다른 날보다 뒷굽이 동작을 세심하게 지도하셨습니다. 축으로 서는 법과 손날 모양을 하나씩 하나씩 잡아주며 깨우침에 더딘 제자들에게 되새김질을 하며 몇 번이고 다시 설명하셨습니다. 펜글씨를 쓰듯이 허트러짐이 없도록 어차피 하는 수련, 단단히 마음먹고 자세를 낮추고 통증마저 받아들일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응용동작에서는 전진할 때, 앞발 뒤꿈치에 중심을 두고 한 다리가 고정되어 흔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시선을 정면을 보고 허리부터 꼬아서 몸의 상하체가 응축되었다가 펼쳐지도록 하라고 요체를 설명하셨습니다.
뒷굽이 동작은 변형근 사범의 자세가 가장 안정적이고 개선의 의지가 있어보입니다. 변형근 사범이 주춤서기를 설명할 때, 말고삐를 잡고 뒤로 앉아 있는 모양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변형근 사범의 설명을 듣다보면 그 역시 늘 수련에 대한 생각이 생활화되어 있어보입니다.
발차기동작은 평소에 수련을 하고 도장에서 검증받는 형국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있게 허리를 비틀면서 무릎으로 차고 나아가야하는데 변명만 늘어갑니다. 평소 발차기 수련이 거의 없다보니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품새수련은 장원석 씨가 4식까지, 본인이 5식 평련을 1회까지 그리고 사범들은 5식을 1번 더 수련했습니다. 이어서 바로 사범들은 1식부터 5식까지, 본인은 1식부터 4식(1식 한번 더)까지 연속품새수련을 하였습니다. 수련할 때는 가능하면 냉정함을 잃지 않기 위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자꾸만 옆사람의 속도와 움직임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수련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몰입 또 몰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호흡을 고르는 동안 원장님께서 연법3식과 4식을 쾌련으로 연속수련하셨습니다. 간결하면서도 꼬임과 펼쳐짐이 조화를 이룹니다. 물흐르듯이 동작이 이루어지면서 힘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좋은 말과 글과 동작은 간결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춤서기 8분으로 금일 수련을 마쳤습니다. 주춤서기 3분에서 시작해서 2008년에는 8분, 그리고 매년 1분씩 늘여가는 것이 원장님의 의지라고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8분이 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또 한 번 연무재 동작 하나하나 담겨있는 선배들의 수련의지가 느껴집니다.
뒷풀이 시간에 원장님께서 선진국으로 갈 수록 기술인력에 대한 대우가 상승한다며 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기회를 만들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작은 습관이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고 행동의 변화가 생각을 바꾸게 되고 생각의 변화가 운명을 바꾸게 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끝으로 괄목상대의 의미를 통해 오늘 우리 수련을 되새겨 봅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 삼국시대 오나라의 손권은 그의 장수 여몽이 무예는 뛰어났지만 학문을 소홀히 하는 것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여몽은 부단히 학문에 힘써 어느날 노숙이라는 학자가 찾아가 그의 학식이 전과 다른 것을 칭찬하자 그는 "무릇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나면 눈을 비비고 대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변형근 대단한..일지네요... 수필을 읽는것 같습니다.